운명 - 임레 케르테스 <책리뷰>

2019. 1. 28.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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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 임레 케르테스

<책리뷰>


<2004년 '다른우리'에서 나온 책은 절판되어, '민음사' 책으로 봤다.>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실제로 열 네살 때 헝가리에서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실화다.

안네 프랑크와 비교를 해보고 싶어 검색을 해 봤다. 놀랍게도 임레 케르테스와 안네 프랑크는 나이가 같았다. 둘 다 1929년생이다. 수용소 생활을 한 시기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아우슈비츠로 끌려 갔는데 그 시기는 소년이 2개월 빨랐다. 임레 케르테스가 1944년 7월, 안네 프랑크는 1944년 9월이었다. 임레 케르테스는 아우슈비츠에서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오갔다. 안네 프랑크는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안네의 일기>는 소녀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에서 쓴 글이고, <운명>은 임레 케르테스가 살아 돌아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완성한 소설이다. 그리고 안네 프랑크는 수용소에서 죽었고, 임레 케르테스는 살아 돌아왔다. 안네 프랑크는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고 하는데, 소설을 보면 소년 쾨베시(임레 케르테스)도 거의 비슷한 최후를 맞을 뻔 했다. 사실 나치의 정책대로 였다면 안네와 쾨베시(임레 케르테스)는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들어가 죽어야 했다. 소설속 설명에 의하면 가스실을 면할 수 있는 조건은 건강해보이는 외모와, 16세 이상의 나이였던 것 같다.

겨우 14살의 소년·소녀들이 이런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분노를 넘어 허탈감이 느껴지고 인간이라는 종에 회의감이 생긴다. (사실 정확히 말해서 피해자들의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과연 이게 나치라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일까?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니라는 증거가 역사적으로 차고 넘친다.

14세 소년의 유대인 수용소 체험기 <운명>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의 가족과 이웃들, 먼저 끌려 간 아버지, 본인이 수용소로 끌려가던 상황,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 수용소의 비참함과 고된 생활, 그 와중에 간간히 느낀 행복감, 여러 번 마주쳤던 죽음의 갈림길,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과 돌아와서 겪게되는 일들...

소설을 읽어보면 화자(14세 소년 쾨베시)의 감정 이입이 거의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일어나는 일들과 주면을 묘사 할 뿐이다. 이런 건조한 흐름이 오히려 나를 이야기 속에 푹 빠트렸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괴로웠다. 괴로웠지만 중간에 덮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이 책을 1973년에 완성했는데 여러 번 출판을 거절 당했다고 한다. 이미 나치의 만행에 대한 작품들이 많이 출간되어 소재가 진부하다는 이유. 그러다가 1975년에 겨우 출판하지만 반응은 역시 미지근했다. 그러다가 2002년에 노벨상을 받고 나서야 재조명을 받는다. 그가 노벨상을 받고 했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경제적으로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발췌>

P. 30

~슈테이네르 아저씨가 아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빠를 애늙은이라고 부르며 오래된 농담도 건넸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면 절망할 일도 없는 법이라네."


P. 83

~"여러분이 가는 곳에서는 더 이상 귀중품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헌병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어차피 독일인들이 다 빼앗을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헝가리 사람에게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 "결국 여러분도 헝가리 사람이지 않소!" ~ "더러운 유대인들! 가장 성스러운 목숨을 가지고도 거래를 하다니!" ~ "목이나 말라 뒈져 버려라!"


P. 96~97

~검사 시간 자체는 기껏해야 이삼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 나는 가슴 근육이 나와 보이게 하려고 가슴을 쭉 폈다. ~ "너 몇 살이니?" 이 질문은 그냥 묻는 듯 보였다. 나는 질문에 대답했다. "열 여섯 살입니다." 의사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는데 순간적으로 받은 인상으로는 내 대답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적합하기 때문에 끄덕인 것 같았다.


P. 114

~"곧 따뜻한 스프가 나온대!"라는 소문이 날개 달린 듯 퍼져 나갔고 곧이어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그 얘기를 하더니 이내 온 운동장에 퍼졌다. 나는 말문이 막혔는데 그것은 식사시간이 됐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나는 그때 그들이 수프 자체 때문이 아니라 처음에 큰 당혹감을 겪은 이후에 느끼는 자신들에 대한 배려에 그렇게 행복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내 느낌으로는 그랬다.


P. 168

~우정이란 것도 유한하며 결국 생존 법칙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P. 169 ~ 174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따라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길과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은 가장 소박한 첫 번째 방법으로 살아왔다. ~ 사실 우리의 상상은 죄수의 몸이라도 자유롭게 허락되었다. ~ 아무리 강제 수용소에 있어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사람을 깨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용소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방법이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이 유혹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 세 번재 방법은 글자 그대로 실제로 탈출하는 방법인데 우리 수용소에서 지금까지 딱 한 번의 시도가 있었다. ~ 그 문장은 "Hurrah! Ich bin weider da!"였는데 "와! 내가 다시 여기에 있다!"라는 의미였다.


P. 178

~ 잠시 후 그가 몸을 트는 바람에 등에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인간적인 미안함 때문에 일부러 가려 주는 것 같았다. 먹는 것을 보는 것만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대단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먹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P. 180

~그런데 이곳에서는 내 몸이 망가지는데 석 달이면 충분했다. 내 몸이 얼마나 망가져 가는지를 매일 반복해서 확인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P. 185

~이날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이 마지막 아침일 거라고 생각했고 걸을 때마다 더 이상 걷지 못할 거라고, 움직일 때마다 더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여전히 걷고 움직이고 있었다.


P. 200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처음으로 신경과민의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몸이 내 몸을 밀치는데도 더 이상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과 유사하고 친근한 다른 사람들의 몸이 바로 내 옆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생소하고 이례적이고 엉성하고 서투른 어떤 감정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04

~ 이미 굳은 가슴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듯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일었고 나는 차갑고 축축한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나는 통찰력을 발휘해 신중하고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P. 207

~ 혹시 설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나도 깜짝 놀랐다.


P. 264

~ 표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그럼 돈을 내라고 했다. 나는 지금 외국에서 오는 길이라 돈이 없다고 했다. ~ 그 규정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윗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표가 없으면 내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P. 282

~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내가 점점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여기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췄다.)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떠오른 말이었다.


P. 285

~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은... 읽어야 할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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