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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책리뷰>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책리뷰>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국내도서
저자 : 천명관
출판 : 문학동네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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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천명관


<스포주의>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여기저기서 넘쳐나는 극찬의 이유와 논란이 된 형식의 파괴가 무엇이었는지 온 몸으로 느꼈다. 다른것을 다 떠나서 대단히 재미 있는 책이다. 작가님의 첫 장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긴 세상에는 [마션]의 앤디 위어 같은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는 천명관이 있었다.


금복과 춘희,, 노파와 애꾸눈 딸, 양물왕(?) 반편이, 곰보 사내, 생선장수와 걱정, 칼자국, 쌍둥이 자매, 코끼리 점보, 文, 무당벌레(철가면), 수련, 트럭 운전사, 약장수, 엿장수, 건축가...


이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책을 덮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책을 덮으면 곧바로 반이상은 일단 까먹는게 일반적인데... 금방 잊기에는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너무 선명했나보다.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 들어 있는 이 소설의 줄거리 요약은 생략한다. 한 마디로 노파 → 금복 → 춘희로 이어지는 인생 소설이다. 노파는 타인이고 춘희는 금복의 딸이다. 시기는 1900년대 전후(?)로 시작해서 1970년대로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나온 북측과의 평화조약이란 시대적 배경이 74남북공동성명으로 추정되기에...)


인상 깊었던 부분을 몇 개 골라봤다.


P. 95~97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그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호칭이 제일 길면서 비운의 캐릭터인 칼자국. 작가님은 이 캐릭터가 그만큼 측은했기 때문에 화려한 수식어를 정성스럽게 지어주셨지... 싶다. 긴 소개문구는 꽤 자주 나오는데 나중에는 수식어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킥킥댔다. 어린시절 나오꼬라는 게이샤를 사랑해서 청춘과 신체의 일부분까지 아낌없이 버린 상남자 칼자국. 원하는게 참 더럽게도 많고 눈이 높았던 나오꼬를 겨우 차지한다. 극도의 쾌락을 동반한 첫날밤까지 치뤘지만 알고보니 나오꼬는 이미 폭삭 늙어버린 할머니였다. 여기서 독자들은 짙은 화장을 한 여인에게 속지 말아야 할 것과 원효대사님의 해골물 명언을 곱씹어야 하겠다. 아무튼 이후 금복을 만나면서 유일한 걱정거리였던 '걱정'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거늘... 오해로 인해 어이없게 사랑하는 여인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이 사내의 불운한 삶은 사랑이라는 환상과 부조리함을 일깨워 준다. 그의 앞에 붙는 숱한 나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들의 동정을 받아 마땅했다.


P. 129

~당시만 해도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며 죽음은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취급받지 못했다. 남쪽 사람들과 북쪽 사람들은 미칠 듯한 증오에 휩싸여 서로 수백, 수천 명씩 한꺼번에 학살했다. ~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춘 채 아무나 붙잡고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었다.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비교적 짧게 서술한 6.25 전쟁. 죽음이 너무나 흔해서 귀하게 취급받지 못했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영신(故이은주)이 북한군에게 배식을 받아 주린 배를 채웠다는 이유로 같은편에게 죽임을 당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념의 법칙이란... 참.



P. 348

~그는 결국 세상에는 비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비밀은 오직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비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록 금복을 배신하고 도망친 약장수와 수련이었지만, 이치들은 평화롭게 잘 사나 싶었다. 하지만 엿장수의 끝없는 욕심이 자신과 이들을 함께 파멸로 이끈다. 약장수는 이해 안되는 명예욕에 집착하고, 수련은 참... 멍청했다.



P. 356

~춘희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평대를 다녀간 사람이 되었고, 불과 몇 년 뒤, 폐허만 남은 평대는 지도상에서조차 이름이 지워져 그 존재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이 부분에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마지막 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세대의 일생을 그린 것도 그렇고, 노파 유령, 애꾸눈 여인의 신비한 힘, 죽지 않는 극장의 개... 곳곳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엿볼 수 있다. 



P. 413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페이지를 할당한 춘희 인생의 마지막 순간들. 춘희의 외로움이 절실히 느껴졌다. 약속을 드럽게도 싫어한 트럭 운전수는 춘희의 마지막에 닿지 못했고 소설은 완성 되었다.




이 책은 한 번 꼭 읽어 보시라.

깔깔대며 실컷 웃을 수 있고, 음탕한 이야기에 마음이 흡족해지기도 하며, 슬픔도 느낄 수 있다.

후회는 없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