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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내 군대 이야기 <03> 어쨌든 6주의 시간은 흘러갔다. 힘들었던 훈련을 끝내고 입소했던 날처럼 대강당에 다시 모였다. 자대배치를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뺑뺑이가 있었다. 교관들이 나와서 뺑뺑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한동안 자랑같은 광고를 했다. 물론 우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뺄 놈들은 벌써 다 뺐겠지. 사기치고 있네 개생퀴들. 낄낄낄." 역사적으로 완전히 공정한 시대는 없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 관심사는 오직 '빽 없는 나는 어디로 가는가?'였다. 수백명의 이름과 육군 사단의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다들 훈련이 많지 않은 후방부대에 배치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실 그런데는 없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오랜시간 집중해서 듣고 있었기 때문에 ..
내 군대 이야기 <02> 입소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지어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인원점검을 하고 자리에 주저 앉아 보급품을 나눠 받았다. 조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급품을 받는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무반 배정을 받고 막사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짬밥을 경험하고 내무반에서 다시 몇가지 보급품을 더 받는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의 본보기가 되는 군대라고 해도 필요한 물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처음 며칠간은 받아야 할 기본교육이 많았는데, 똥강아지처럼 나대던 혈기왕성한 핏덩이들을 군대라는 규율잡힌 틀 안에 넣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집단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규칙은 어색했다. 이동할때는 항상 새로 배운 군가를 불렀고 구령을 붙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슬슬 군인스러운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 제대로 ..
내 군대 이야기 <01> 원래 입대 예정일은 97년 12월 7일이었다. 방학전 휴학 신청도 끝낸 참이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에 날짜가 딱 좋아서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일이 꼬였다. 당시 대학생은 가만히 냅두면 1차 입영일이 자동 연기가 되었던 것! 나중에 알게 된 나는 허겁지겁 입대 신청을 다시 했고, 다시 받은 날짜는 3월 19일이었다. IMF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 군대에 가려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오히려 더 뒤로 안 밀린 걸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정작 3월에 입대해서는 한 겨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추위도 많이 타는 주제에 12월에 입대하려고 했다니...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3월도 완전 추웠다. 친구 병돌이(가명)와 엄마, 아빠가 동행했다. 병돌이도 다음 달 입대 예정이었..
3.1절의 단상 3.1절이다. 올해가 100주년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을 생각한다. 조상님들의 억울했을 삶을 생각해보면 고마운 마음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힘들었겠지.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를 증오하는 혐한이란 단어는 많이 쓰는데, 우리가 일본과 중국을 미워하는 혐일, 혐중이란 단어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쁜 단어는 나쁜 녀석들 에게만 사용하는 게 어울려"라는 마음일까?국사책을 생각해봐도 이상한 점이 있다. 외세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면 침략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왜 고구려나 발해의 영토확장은 정복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아내가 일본사람인 대학 동기(형)가 있다. 그 형의 큰아들이 초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