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을 읽고...

2018. 6.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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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을 읽고...





개인주의자 선언
국내도서
저자 : 문유석
출판 : 문학동네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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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지에 대한 고찰. 여러가지 사례도 재밌었고, 어떤 문제에서는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 

우리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성찰도 많았고, 개인주의자라는 단어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따듯한 작가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목차


프롤로그 : 인간 혐오


1부 :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나라는 레고 조각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마왕 혹은 개인주의자의 죽음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

자기계발의 함정

광장에 내걸린 밀실

행복도 과학이다

개인주의자의 소소한 행복

나는 사기의 공범이었을까

전국 수석의 기억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88학번

20년 만에 돌아온 신림동 고시촌


2부 : 타인의 발견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우리 이웃들이 겪는 현실

필리핀 법관의 눈물

아무리 사실이라 믿어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말이 흉기다

인천의 비극

증인에 대한 예의

국가가 갖출 예의

딸 잃은 아비를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문학의 힘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장그래에게 기회를!

조정 달인의 비결

서른아홉 살 인턴

'머니볼'로 구성한 어벤저스 군단

우리가 공동구매할 미래


3부 :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진실은 불편하다

정답 없는 세상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

조폭의 의리와 시민의 윤리

사회를 묶어내는 최소한의 가치 - 케임브리지 다이어리1

필라델피아 한낮의 풍경 - 케임브리지 다이어리2

무지라는 이름의 야수

문명과 폭력

슬픈 이스탄불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메드다

우리가 참조할 모델사회는 어디일까

지상천국은 존재하는가

담대한 낙관주의자들이 꿈꾸는 대담한 상상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

낯선 것에 대한 공포와 성숙한 사회


에필로그 : 우리가 잃은 것들







 P. 7 ~ 10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

그런 나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살수는 없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에필로그.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한때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참 열심히도 싸우면서 살았다. 작가님이 말하는 차이에 대한 용인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오랜시간을 함께 지내온 친구들과도 말이다. 사람은 정말로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나도.








 P. 22 ~ 27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다수인 집단에 속하게 될 때 같은 생각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주는 안도감과 위로감은 종종 개인의 판단력을 심각하게 흐린다. 왕따를 가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수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구타와 가혹행위를 많이 당해온 군대고참은 후배들에게 비슷하게 하는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군 장교들중 집에서 매우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은...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P. 56 ~ 58


인간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집단주의 문화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에 대해 서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요즘 이 작가님이 쓴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 박차오름은 신입판사 주제에 부장판사들한테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다. 작가님이 말하는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당찬 개인주의자다.

나는 이 드라마가 매우 좋다.

가끔 어설프고 이야기의 흐름이 어색할때도 있지만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분쟁에서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우쳐 준다.







 P. 201 ~ 209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의 두 측면을 있었던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얼마든지 지금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보면 마치 이 사회가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인류는 속을 만큼 속았다.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보수와 진보, 지역주의, 계층간의 갈등.

종국에는 북한과도 통일을 이루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한다. 일단 출발은 나에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각각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모든 문제를 이념으로 보는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한다.






 P. 210 ~ 246


악마와 싸우는 건 차라리 쉽다. 선량한 사람들의 절실한 희망과 맞서야 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것이 거짓 희망일지라도 말이다.

~

추상적인 '국익'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자체부터 의문이었다. 차라리 난치병 극복이라는 인류애에 천착한 것이었다면 차라리 좀 나았을 것 같다.

~

한국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영웅이 되기는커녕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그 고발이 진실이었고, 공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밝혀져도 대중의 정서는 내부고발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뒤에서는 '저런 사람 무서워서 어디 누가 같이 일하겠어?'라며 수군거린다. 왜일까.

~

윗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그 허물보다 더 큰 잘못이 되고 패륜으로 지탄을 받는다. 가족의 잘못은 감싸고 숨겨주는 것이 옳은 일이 된다.

~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

만약 다수의 의견이 늘 옳다면 인류는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잔인한 사적 보복을 허용하며 인종 간 결혼은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고 있지 않을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에 대한 정교한 견제장치도 같이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작가님의 생각에 가장 격하게 공감했던 챕터. 황우석 사건으로 모 방송사의 PD와 내부고발자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국민의 적이 되었다. 사실로 밝혀진 도적적,법적 흠결이 집단(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덮어졌어야 한다는 다수의 생각이 무섭게 느껴졌다.


최근[미스 함무라비]에서도 이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평소 사람좋기로 유명했던 한 부장판사가 경제적 지원을 해 주던 한 기업의 송사와 관련하여 후배판사에게 청탁을 한다. 여주인공에 의해서 그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잡혀가게 된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며 남아있는 동료와 선배들이 여주인공에게 차가운 시선을 건네는 현실...


외부인의 입장에서야 객관성을 유지하기 쉽겠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라면 사람들의 원칙과 소신은 유연해지기 마련이다. 참 씁쓸하고도 민감한 문제다.





 P. 268 ~ 269


감히 가정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지는 이야기지만, 세월호 사고 초기에 선장이나 해경 현장 지휘자가 모든 승객에게 당장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일부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 차가운 수온, 거친 해류, 여기저기 부딪치는 사고...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최선의 결단을 했다며 격려해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 구조선과 더 유기적으로 협조했어야 한다, 구명정을 차례로 내렸어야 한다 같은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작가님 말대로 너무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세월호 사고의 문제.

안타까운 마음에 선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의 무책임에 분노했고,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도 상상했던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언급한 책임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과책임론'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할 우리나라의 잘못된 문화가 아닐까? 최근 열리고 있는 월드컵도 이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관련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일부 부진한 선수들을 기용한 감독에 대한 지탄이 대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의견이 추천을 많이 받는다.

 

"역시 히딩크를 다시 데려와야 했다."


"아무개 선수를 기용하는게 실수였다."


역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기용했던 무명의 박지성. 그당시 박지성 선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또는 다른 이유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경기중 실수까지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축구협회에 구조적인 문제나 비리가 있다면, 혹 국가대표 감독이 개인적인 이유로 선수를 편파적으로 기용했다면 그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문제이지만, 그냥 소신껏 한 결과에 대한 비난은 아닌지 모두가 생각해 봐야하는 것 아닐까?



 


 P. 278


그때 갑자기 떠올렸다. 이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말이다.

~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에필로그의 에피소드도 여운이 남았다. 

시장통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아주머니. 뒤늦게 발길을 돌려 아이를 같이 찾으려 했던 작가님은 너무 다행히도 아이를 찾은 모습을 확인 했다. 이렇게 우리 각자가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고 산다면... 내 이웃들이 그런사람들 천지라면 얼마나 안심되는 세상이 될런지. 당연히 내 이웃이 그렇지 않은것을 지적하기전에 내가 그런 이웃인지를 돌아봐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JTBC 손석희 앵커가 이 책의 주제로 지목한 부분을 소개하며 감상을 마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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