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대 이야기 <03>

2020. 2. 4. 02:17창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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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06>

 

어쨌든 6주의 시간은 흘러갔다. 힘들었던 훈련을 끝내고 입소했던 날처럼 대강당에 다시 모였다. 자대배치를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뺑뺑이가 있었다. 교관들이 나와서 뺑뺑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한동안 자랑같은 광고를 했다. 물론 우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뺄 놈들은 벌써 다 뺐겠지. 사기치고 있네 개생퀴들. 낄낄낄."

 

역사적으로 완전히 공정한 시대는 없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 관심사는 오직 '빽 없는 나는 어디로 가는가?'였다. 수백명의 이름과 육군 사단의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다들 훈련이 많지 않은 후방부대에 배치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실 그런데는 없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오랜시간 집중해서 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진이 거의 빠져버릴 지경이었다. 느닷없이 김머시깽이 교관놈이 말했다.

 

"마지막까지 호명 안 된 훈련병들은 모두 전경 입니다."

 

망했다. 그 신병교육대는 예전부터 전경이 많이 착출되기로 유명하긴 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전경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오~! 내가 이럴거면 의경을 지원했지 이 새끼들아! 난 육군으로 가고 싶다고오오~!" 

 

속으로만 외쳤다. 전경이 싫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직 구타가 많이 남아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나와 70명 정도 되는 내 전경 동기들은 모두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어쨌든 전경이 된 훈련병들은 충주에 있는 경찰학교로 가야 했고, 거기서 2주간 교육을 더 받아야 했다. 지겨운 훈련병을 끝내고 팔에 앙상한 작대기 하나를 얼른 달고 싶었던 기대감은 그렇게 무너졌다. 경찰에 우리를 인계하기 위해 김머시깽이 교관이 우리를 실은 트럭에 같이 올라탔다. 역으로 향하던 중 이놈이 쓸데 없는 말을 보탰다.

 

"솔직히... 전경이 육군보다는 더 빡세다. 아직 구타도 있고. 훔... 그래도 모두들 열심히 잘 하기 바란다."

 

이미 듣고 있었던 소문이었지만 육군 훈련소 교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나와 동기들은 한 층 더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김중위 저새끼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걸꺼야... 우리 신경쓰지 말자."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실은 동기녀석의 중얼거림도 별 위로는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나쁜일에 대한 예감과 소문은 사실로 드러날 확률이 꽤 높다.

 

 

<경찰학교 01>

 

증평역에서 기차를 타고 충주역으로 갔다. 멀지 않았다. 육군 훈련소에 비해서 경찰학교의 교육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수류탄 투척이나 사격같은 위험한 훈련은 없었다. 교관들도 육군 훈련소에 비하면 다들 신사였고 사무적이었던 느낌이다. 다만 그곳에도 한 가지 우리 눈에 거슬리는게 있었다. 

 

'기율대'

 

자대에서 사고를 친 전,의경들이 들어오는 군기교육대 같은 곳이었는데, 신병인 우리들의 눈에 그 집단은 상당히 공포스러웠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때 종종 녀석들과 마주쳤는데, 그 죄인(?)들은 신병인 우리들보다 훨씬 더 군기가 잡혀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에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추어서 발을 디뎠고, 팔을 거의 머리 근처까지 쭉쭉 뻗어 올리며 걸었다.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는 녀석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사열하는 북한군 같은 기괴한 느낌이었다. 종종 그녀석들이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기율대의 조교에게 욕을 먹고 얻어맞는 신병들이 생겨났다.

 

"뭘 봐 ~ 이 개새끼들아! 눈깔 안 돌려? 뒈질래?"

 

동기 녀석 몇 명이 그 조교한테 심하게 얻어 터졌다. 그 다음부터는 마주쳐도 고개는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굴리며 구경했다. 기율대의 거처는 우리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밤에 취침하려고 소등을 한 시간에도 종종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동기녀석 하나가 말했다.

 

"와... 저 새끼들은 왜 밤에도 저 지랄이냐. 완전 삼청교육대 아니냐? 잠을 아예 안 재우나봐? 독한 새끼들... 우리는 자대가서 사고치지 말자. 저기 들어가면 진짜 병신 될 거 같아."

 

 

<경찰학교 02>

 

경찰학교의 2주도 지나갔다. 다시 자대배치의 순간이 왔다. 경찰학교에서의 자대배치는 지역별로 나눴다. 

 

"우선 경기지방경찰청!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다음은 서울지방경찰청!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이런 식이었다. 나는 당연히 집이 있는 인천지방경찰청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내 이름은 마지막까지 불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주지방경찰청!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KS.RYU!"

 

제주도로 배치된 동기는 나를 포함해서 13명 이었다.

 

"헐... 제주도라니. 이거 좋은거냐? 나쁜거냐?"

 

우리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저녁7시에 배에 올라 다음날 오전 8시에 겨우 제주에 도착을 했다. 가는 동안 우리 동기들 사이에는 제주 전경에 대한 갖가지 소문과 추측이 나돌았다.

 

"제주도 되게 편하대! 훈련도 거의 없고 완전 좋대!"

 

"아냐 븅신아! 거기 구타 장난 아니래. 양말에 비누를 넣어서 때린다더라. 그러면 멍이 안들어서 티가 안난대!"

 

"에이... 요즘 구타 거의 없어졌다고 했잖아."

 

"그건 육군이고. 전경은 아직 존나 많이 때린데... 장난 아니래. 훈련소 나올 때 김중위 그 새끼가 했던 말 기억 안 나냐?"

 

동기들간에 설전이 이어졌다. 결국 천국일지 지옥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물론 13명 전원 한 마음 한 뜻으로 천국이기를 바랐지만... 나는 분명히 무신론자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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