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대 이야기 <01>

2020. 1. 29. 17:27창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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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원래 입대 예정일은 97년 12월 7일이었다. 방학전 휴학 신청도 끝낸 참이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에 날짜가 딱 좋아서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일이 꼬였다. 당시 대학생은 가만히 냅두면 1차 입영일이 자동 연기가 되었던 것! 나중에 알게 된 나는 허겁지겁 입대 신청을 다시 했고, 다시 받은 날짜는 3월 19일이었다. IMF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 군대에 가려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오히려 더 뒤로 안 밀린 걸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정작 3월에 입대해서는 한 겨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추위도 많이 타는 주제에 12월에 입대하려고 했다니...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3월도 완전 추웠다.

 


 

<입대>

친구 병돌이(가명)와 엄마, 아빠가 동행했다. 병돌이도 다음 달 입대 예정이었다. 인천에서 증평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기분에 걸맞게 날씨도 꾸리꾸리 했다. 가랑비도 내렸던 것 같다. 입맛도 별로 없었지만 훈련소 근처 식당에서 파는 갈비탕은 정말 맛이 드럽게도 없었다. 몇 숟가락 먹지 못했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식당을 나와 연병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환한 얼굴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별하는 연인들도 있었다. 한쪽에서 어떤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보기 무척 흉측했지만 속으로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게 여친이란 당최 찾아볼 수 없는 전설의 동물이었다. 연병장 구령대에서 교관 한 명이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마지막 멘트만큼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럼 훈련병들의 부모님과 지인 분들께서는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헤어져야 하니까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본 건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내 속에서도 뭔가 순간적으로 울컥 올라왔다. 극한 상황에서의 눈물은 엄청 빠른 도미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웬만하면 그런 눈물은 흘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눈물을 엄마가 보지 못하게 고개를 휙 돌리고 연병장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훈련소 01>

먼저 군대에 간 친구들에게 군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대개 싫든 좋든 입수하게 된다. 녀석들의 말에 의하면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건물 뒤로 돌아서면 곧바로 조교들이 욕을 할 거라고 했다. 친구들이 먹었던 욕은 다음과 같았다.

 

"빨리 뛰어 이 개새끼들아!"

 

사실인지 궁금했는데 내가 간 훈련소는 그렇지 않았다. 욕을 들었어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타격은 크지 않았을 것 같다. 다른 정보들도 있었다. 입소 초반에는 변비에 걸린다던지, 며칠 지나지 않아 휴지가 모자랄 것이라는 이야기는 적중했다.  신기하게도 3일 동안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지 않았고, 미리 대비해서 꼼쳐논 휴지도 얼마 가지 못했다. 휴지 보릿고개에서는 두루마리 휴지 3~4칸 정도로도 뒤처리가 가능했다. 입대 초기에는 주로 된X이 나왔기 때문이리라. 이유는 모르겠다. 밥에 약을 섞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성욕을 감퇴시키는 약이란 말도 있었지만, 휴지값을 아끼기 위해 X을 되게 해주는 약을 넣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휴지가 모자란 그런 상황에서 된X은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는 소원수리용 16절 갱지를 이용해서 뒤처리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땐 항문 파열을 방지하기 위해서 종이가 부드러워지도록 엄청 구겨대야 한다. 가끔은 휴지보다도 더 부드러워진 16절 갱지를 보며 스스로 흐뭇함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하고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동물이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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