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대 이야기 <02>

2020. 1. 30. 17:16창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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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02>

입소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지어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인원점검을 하고 자리에 주저 앉아 보급품을 나눠 받았다. 조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급품을 받는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무반 배정을 받고 막사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짬밥을 경험하고 내무반에서 다시 몇가지 보급품을 더 받는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의 본보기가 되는 군대라고 해도 필요한 물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처음 며칠간은 받아야 할 기본교육이 많았는데, 똥강아지처럼 나대던 혈기왕성한 핏덩이들을 군대라는 규율잡힌 틀 안에 넣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집단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규칙은 어색했다. 이동할때는 항상 새로 배운 군가를 불렀고 구령을 붙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슬슬 군인스러운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 제대로 된 훈련이 시뻘건 눈빛을 번뜩거리며 신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소 03>

입소 첫날이 지나면 밖에서 입고 왔던 옷과 신발, 소지품을 챙겨 집으로 택배를 부친다. 이때 다들 부모님께 편지도 한 통씩 넣는다. 조교가 시킨거지만 그 편지안에는 대부분 부모님에 대한 진심이 담긴다. 잠시나마 이 때 만큼은 다들 효자가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군대 생활이라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진다. 동기들과는 이미 친해질대로 친해졌다.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끼리는 더 쉽게 친해진다. 입소 첫 날이나 둘째 날은 밤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훌쩍거리는 녀석들이 몇 명 생기는데, 나는 셋째 날 그랬다. 입소할 때 울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이 흘렀다. 옛날 뽀빠이 이상용이 진행하던 '우정의 무대'라는 방송에서 군바리들이 죄다 왜 그렇게 마마보이처럼 엄마만 찾아댔는지 알 것 같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속박 당하고 냉혹한 현실에 던져진 인간들은 맹목적인 사랑을 준 유일한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유일한 사람은 아빠나 다른 가족, 애인보다는 '엄마'가 역시 제일 잘 어울린다. 새벽 구보가 끝나면 조교들은 항상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향해 3초간 함성을 지르라고 시켰다. 이 때에도 엄마를 생각하면 목소리가 더 크게 나왔다.

 

 

<훈련소 04>

사람이 시간을 느끼는 감정은 정말 상대적인 것 같다. 입대한 지 겨우 몇 주 지나지 않아 자신이 군대 밖에서 민간인으로 있던 시절이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역의 그날도 여전히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내 앞뒤로 엄청나게 두꺼운 시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 인생이 군대라는 블랙홀 안에서 시간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속으로 독백을 했다.

 

"내가 정말로 한 때 민간인이었나? 언젠가 다시 민간이이 될 수 있을까?"

 

제대하고 나서도 군시절을 떠올리면 인생의 다른 시기와 비교해 볼 때 무척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아인슈타인은 정말 천재다. (다른 의미겠지만 ...)

 

 

<훈련소 05>

우리 옆 중대에는 우리보다 1주일 늦게 입소를 한 훈련병들이 있었다. 우리는 꼴에 1주일 빨리 들어왔다고 그녀석들을 볼 때 목에 힘을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유치하긴 해도... 인간이란 그런 법이다.

 

"우리가 1주일동안 먹은 짬밥이면 쟤들을 모두 묻고도 남지..."

 

막 이랬다. 그런데 우리가 5주차 훈련을 끝내고 퇴소를 1주일 남겨둔 어느 날, 그녀석들이 몽땅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연병장에 집합해 있었다. 나와 동기들 몇 명은 그 상황이 이해가 안되어 멍하니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지나가면서 귀띔을 해 줬다.

 

"쟤네들 공익 기수래. 4주 교육이지. 쟤네는 이제 집에 가는거야. 집에가서 엄마가 해주는 따순 밥 쳐 묵으면서 출퇴근 하겠지... 와 ... 신발 진짜 개부럽다!!"

 

정말 개부러웠다. 그 즈음에는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웃긴게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 녀석들 중에는 나보다 100만배는 튼튼해 보이는 녀석들도 많았다. 나는 입대전 신체검사에서 170cm에 50kg 이었다. 그런데 그녀석들은 대다수가 키도 조낸 컸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옷 밖으로 근육이 울퉁불퉁 삐져나온 녀석들도 많았다. 세상이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기녀석에게 물었다.

 

"야... 저기 빨간 옷 입은 저 근육돼지랑 나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글쎄... 쟤가 한 손으로도 이길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잘못 되었던 것 같다. 현역과 공익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훈련을 받을 수 없었던걸까? 훈련소 5주차 신병들에게 늦게 입소한 녀석들이 먼저 집에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진짜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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